
(미디어원=이정찬 기자) 이른 아침 행장을 차리고 나서는 길 , 토닥토닥 겨울 빗줄기가 나를 앞선다 . 서울에서 영양까지 800 리 길을 단숨에 달려야 하는 여정에 겨울비가 달갑지만은 않다 . 조금씩 옅어지던 빗줄기가 거의 사그라들 무렵 , 나는 중앙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안동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 그래도 남은 거리 60 ㎞ , 한 시간 반은 더 내달려야할 거리다 .
경상북도 영양은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을 방풍림 삼아 첩첩산중 옛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안동 영주 봉화 청송 영덕 등의 인근 도시는 왕복 2 차선의 국도로 연결되어 있을 뿐 , 내륙 깊은 곳에 위치한 영양은 철길조차 없는 오지 중의 오지이다 . 남안동에서 영양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험준하다 . 가파른 계곡을 따라 이어진 좁은 길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
그러나 길들이지 않고 , 퇴색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엔 탄성이 절로난다 . 임하호 일대는 초겨울의 황량한 분위기 속에서도 맑은 물이 사뿐히 흘러내리고 , 새하얀 눈 모자를 쓴 나목들이 줄지어 서있다 . 타임머신을 타고 60 년대로 돌아간 듯 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

그렇게 영양은 북쪽의 일월산과 동쪽의 백암산으로 둘러싸여 1000 년의 세월을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
역사서는 영양을 교통이 불편하고 흉년이 잦아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가 많았다고 기록한다 . 그 옛날 영양에서 관아가 있는 울진으로 가기 위해 울면서 넘었다는 울릿재 , 높디높은 재를 넘으며 한탄을 했다는 예우름재 등 험한 지형과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민초들의 한이 묻어 있는 지명을 쉽사리 찾을 수 있다 .
안동시와 영양군의 경계를 넘고 진보면을 지나니 음식디미방 체험관이 있는 석보면이 지척이다 . 석보면 역시 60 년대 말과 70 년 중반 사이에서 멈추어 선 듯 하다 . 소박하고 꾸밈없는 옛 우리네 농촌 마을모습 그대로다 . 점방에서 과자 몇 봉지와 소주병을 들고 나오는 아낙네의 얼굴에서 인심 좋던 그 시절 옆집 돌이 엄마의 기억이 담겨 있다 .

음식디미방 체험관으로 들어서니 , 잠시나마 불안하고 염려스러웠던 마음이 사람들의 열기로 녹아내린다 . 석계 종부 조귀분 여사의 맛깔스런 설명으로 참석자들은 17 세기 중엽 써진 최고의 한글 요리서 ‘ 음식디미방 ’ 의 ‘ 석류탕 ’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
여중군자 장계향은 석계 이시명의 부인으로 시와 서화에 능하고 효행과 부덕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 열 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켜 신사임당에 비견되는 인물로써 ‘ 위대한 어머니상 ’ 으로 추앙 받고 있다 .

정부인 안동장씨가 친필로 쓴 음식디미방은 후세 사람들에게 음식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가기를 바랐던 그의 뜻대로 340 년이 흐른 지금 조상들의 멋과 맛을 재현하며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2008 년 시작된 영양군의 음식디미방 체험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지역관광 마케팅 홍보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 이는 현대인의 ‘ 웰빙 ’ 에 대한 보편적인 욕구와 전통 음식에 대한 기대를 간파하고 음식디미방이라는 확실한 테마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

영양군이 음식디미방 체험관 운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진하는 음식디미방 문화관광자원화사업은 보편적이고 지속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전통음식을 주 테마로 함으로써 다방면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 .
무엇보다 다른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278 억원의 예산이 투자됨으써 경제적 타당성은 물론 지역문화 특색을 살린 성공전략사업이라 하겠다 . 음식디미방 문화관광자원화 사업이 한류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에게 음식한류를 전파하는 , 소위 한식 세계화의 중심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

디미방 음식체험이 끝나니 날이 어두워진다 . 두들마을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두들마을은 석계 이시명 선생이 인조 18 년인 1640 년에 터를 잡고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한 후 후손들에게 대대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재령이씨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 마을의 이름인 ‘ 두들 ’ 에서 마을이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이시명 선생의 석계고택은 마을의 중심에 자리해 후손들이 선생의 충절과 여중군자 장계향의 효행과 부덕을 기리도록 하고 있다 .
한옥 체험은 도회지의 편안한 생활에 젖은 도시인들에게는 불편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 두들마을은 전통가옥에 아주 제한적인 시설을 더 했기에 60 70 년대의 우리 삶을 그대로 돌아보게 한다 . 오래되고 낡은 20 인치 TV 에서 유명 아이돌의 거침없는 춤사위와 노래가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펼쳐진다 . 과거로 돌아간 산골에서의 호젓한 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 …… . 스위치를 끄고 문 밖으로 나가니 소리 없이 함박눈이 쌓이고 있다 . 깊은 산골 영양에서의 하룻밤은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같이 그렇게 흘러간다 .

산골 오지 영양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은둔에서 새 세상의 또 다른 중심이 되려는 순간이다 .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한스러웠던 시대는 가고 이제 대한민국 최고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청정한 자연 , 맑은 물과 더 없이 깨끗한 공기 , 오염되지 않은 먹거리 , 고지대에 위치하여 한여름에도 무더위가 비켜 가는 곳 …… . 최고의 관광지역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
영양군의 관광발전을 확신하는 또 다른 이유는 관광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정창진 주사에서 찾는다 . 관광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영양군을 일류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과 노력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 산골 공무원의 열정이 결실을 맺을 날이 멀지 않은 것을 확신하며 다시 길을 나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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