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슬 기자 ㅣ 미디어원
SK가 협력사와의 상생 협약을 통해 동반성장 체계를 한 단계 넓힌다. 기존 1차 협력사 중심의 지원을 넘어 2차, 3차 협력사까지 상생의 효과가 흘러가도록 대금 지급, 거래 관행, 기술개발, 금융 지원을 함께 묶은 것이 이번 협약의 핵심이다.
SK는 7월 2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SK-1·2·3차 협력사 간 상생 협약’ 체결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지동섭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 계열사 CEO와 협력사 대표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에코플랜트, SK지오센트릭, SK실트론, SK AX, SK인텔릭스 등 7개 계열사와 100여 개 협력사가 협약에 참여했다.
이번 협약은 SK 계열사와 협력사 간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상생 문화를 2차 이하 협력사까지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기업과 1차 협력사 사이의 상생만으로는 공급망 전체의 체질을 바꾸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2차·3차 협력사가 자금 회수 지연과 금융 부담, 기술개발 비용 부담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이번 상생 협약을 통해 상생의 가치가 SK에서 1차, 2차, 3차 협력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협력 문화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공정위도 SK와 협력사 간 상생 노력이 성장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협약에는 대금 지급 조건 개선 방안, 거래 관행 개선, R&D 및 금융·자금 지원 확대 방안이 포함됐다. 우선 1차 중소 협력사를 대상으로 마감 후 최대 10일 이내 지급 등 대금 지급 기한을 단축하고, 현금 지급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대금 지급 조건을 개선하기로 했다.
상생결제시스템을 활용하는 협력사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상생결제시스템을 통해 2·3차 협력사도 별도로 마련된 예치 계좌의 자금을 기존보다 조기에 받을 수 있어 중소 협력사의 유동성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금이 제때 흘러가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공급망 상생은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의 첫 축은 돈의 흐름을 앞당기는 데 맞춰져 있다.
거래 관행 개선도 함께 추진된다. 1차 협력사가 2·3차 협력사에 대해 대금 지급 조건을 완화할 경우 재계약이나 신규 협력사 선정 평가에서 가산점을 부여한다. 각 단계별 협력사의 지급 기한과 지급 수단도 점검해 협력사 생태계 전반에 건전한 대금 지급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금융 지원도 확대된다. SK는 그룹 공통 동반성장 펀드의 지원 대상을 2·3차 협력사까지 넓히고, 협력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계층별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을 넓히는 것은 단순한 금액 확대보다 의미가 크다. 공급망 아래 단계에 있는 기업일수록 금융 접근성과 교육 기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는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한 기술 지원이 추진된다. 협력사가 고가 장비를 활용해 신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분석측정지원센터를 지속 운영하고,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제품 신뢰성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 ‘트리니티 팹’을 가동한다. 기술 개발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완료 후 성과와 기여도를 인정하는 ‘R&D 도전 보상제’도 운영할 예정이다.
SK의 이번 협약은 단순한 사회공헌이나 이미지 차원의 상생이 아니라 산업 공급망 안정성과도 연결된다. AI 인프라와 반도체, 통신, 친환경 소재, 건설·플랜트, 디지털 전환 분야는 모두 복잡한 협력사 생태계 위에서 움직인다. 대기업 단독의 투자만으로는 속도와 품질, 납기, 기술 혁신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2·3차 협력사까지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산업 경쟁력의 조건이 되고 있다.
SK가 이번 협약에서 대금 지급과 금융 지원뿐 아니라 R&D와 교육을 함께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금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기술 역량을 키우고, 협력사 임직원의 업무 역량까지 높여야 공급망 전체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생의 범위가 구매 계약을 넘어 기술, 인력, 금융으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이번 협약은 향후 SK그룹의 동반성장 전략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1차 협력사에 머물던 상생 프로그램이 2·3차 협력사까지 실제로 흘러가는지, 대금 지급 조건 개선이 현장에서 체감되는지, R&D 지원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
AI 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대기업의 투자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 시장에서는 협력사 생태계의 회복력과 실행력이 함께 중요해진다. SK의 이번 상생 협약은 협력사를 비용 절감 대상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공동 성장 파트너로 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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