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을 인터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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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최고의 블루칩으로 불리며 ‘떠올랐다’. 누가 국내 아무도 관심 을 갖지 않았던 이곳을 최고의 휴양지로 만들었을까?
필리핀 항공의 김기태 한국 지사장은 필리핀을 발로 뛰며 한국에 알린 필리핀 여행의 대부다.
숱한 고비와 시련, 죽을 위험도 여럿 넘겼지만 꿋꿋하게 지금의 위치에 까지 오른 ‘남자’ 김기태 지사장을 만났다.

# 필리핀 여행? 발로 뛰었다
필리핀항공  김기태 사장필리핀 항공사는 서울시립미술관 왼편 신아빌딩 1층에 위치한다. 익숙한 길에서 흐르는 잔잔한 긴장감은 ‘필리핀 여행의 대부’ 라는 말이 충분히 대변해 줄 수 있다. 김기태 지사장은 GSA에 1989년 3월에 입사했다.

필리핀과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져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필리핀은 아직 입국에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처음 필리핀 이라는 곳을 들었을 때는 자신도 몰랐던 곳이었지만, 첫 방문 후 그의 머리에는 오로지 필리핀이 가득 차게 됐다. 당시 필리핀 상품은 씨티투어 3박 4일, 팍상한, 푸에르토아즐 4박 5일이 전부였다.

김기태 지사장은 공항에서 많은 외국인을 봤다고 하는데 시내에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궁금함에 본사에 물어보니 모두 섬에 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리핀에 섬이 있냐는 두 번째 물음에 7107개라는 답을 듣고 시장성을 느꼈다고 한다.

현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인바운드 여행사가 전무한 상태여서 외국계 여행사를 통해 보라카이, 세부, 엘리도, 다바오의 펄팜 리조트 등을 관광객으로 다녔다. 중국계 인바운드 여항사가 두 곳 있었지만 가이드는 노인 둘이 전부였고 서비스도 엉망 이었다. 특이한 에피소드로는 콜론섬 부수앙가에서는 폭우로 배가 침몰할 뻔 한 일이 있다. 칼라윗 이라는 여의도 10배 면적 사파리 공원이 있는데, 그 곳을 2인승 고기잡이배로 가는 중 폭우로 배가 가라앉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다른 일이 또 없냐는 질문에 죽을 고비만 많이 넘겨서 즐거운 에피소드는 아니라고 웃는다. 칼라윗 사파리 공원에서 인상 깊었던 것으로는 저녁 해변을 새끼를 밴 암컷과 수컷이 함께 걷는 모습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도 그 장면이 아웃 오프 아프리카의 한 장면처럼 잊혀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많은 횟수로 필리핀의 섬에 드나들었지만 정작 그가 생각한 첫 작업은 필리핀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90년대 초 당시, 필리핀의 이미지는 한국에서 좋지 않았다. 이미지가 나쁜 곳의 여행상품을 개발해서 무엇 하겠냐는 말에 그간의 여정들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93년까지 보라카이 20번, 세부는 5번, 부수앙가 2번 등 30여번의 필리핀길에 올라 그 곳의 리조트를 모두 경험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필리핀을 한국에 알리고 나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 시킨 것이다. 대부분의 섬을 돌며 1만여 장의 슬레이드 필름을 만들었고 필름을 3달 동안 국내 각 여행사를 찾아다니며 상영했다. 노력의 결과 그가 만든 첫 여행 상품이 94년 출시 됐다.

상품이 첫 선을 보인 날 누구도 그가 성공하리라 여기지 않았다. 당시 하와이가 69만원 하던 시절, 보라카이를 79만 9천원, 엘리도는 109만원에 책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높은 가격이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은 지사장의 마케팅 덕분이었다. 김 지사장은 파격적인 마케팅을 했는데, 이 방법이 요즘엔 쉽게 찾을 수 있는 럭셔리 마케팅 이었다.

처음부터 시장을 인도하는 상류층을 공략했고 그 방법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 결과 필리핀을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휴양지로 만든 짜릿한 경험을 했고, 이어 2000년대에는 럭셔리 허니문 관광지로 필리핀을 부상 시켜 또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했다.

# 필리핀, 필리핀 항공과 사랑에 빠지다
필리핀 항공은 올해 70년 생일을 맞는다. 선물을 받아도 되는 것을 굳이 한국 여행객에게 뭘 준다고 한다. 필리핀 항공의 선물은 세부 마닐라 노선의 증편이다. 마닐라·인천 노선은 17일 이후 매일 2회, 부산에서는 수, 목, 토, 일 운항 한다. 인천·세부도 16일까지 수, 목, 토, 일 운항 한다. 놀라운 사실은 필리핀 항공을 이용하는 승객 중 95% 가 한국인 이라는 점이다.

주 고객을 묻는 질문에, 김 지사장으로부터 현지 교민과 비즈니스맨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 9월부터는 인천·세부 노선 항공기가 A330으로 바뀐다. 기존 150인승에서 300인승으로 바뀌는 것이고, 10월부터는 마닐라 노선의 기체가 아침에는 A330, 저녁에는 보잉747 기종으로 바뀌어 항공권 수급이 두 배 가까이 좋아진다.

필리핀 항공은 70년 역사에서 단 한 번의 사고도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는 지속적인 노후 비행기의 교체로, 가장 오래된 기체도 97년에 구입한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항공사지만 기체는 가장 젊은 재미있는 항공사가 필리핀 항공이다. 김기태 지사장은 안전을 제일로 생각하기에 겪는 불편도 크다고 말했다. 필리핀 항공이 가장 많이 받는 불평은 결항이다.

항공사로 최대의 아쉬움이긴 하지만 그 속사정은 뿌리까지 고객 위주였다. 모든 항공사가 그렇지만 비행의 모든 권한은 기장이 갖는데, 마닐라 상공의 사정이 좋지 못하면 주저 없이 비행을 하지 않는 것이 이 항공사 기장의 특징이다. 한편으로는 승객이 찾아와 다들 가는데 왜 못가냐 할 때,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배제 할 수 없다면 비행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설명한다고 전한다.

필리핀 공항의 보안이 굉장히 세다고 들었다는 본지 질문에 시간대 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다고 말했다. 열대 기후 특성상 아침과 밤에 승객이 많이 몰리고 단독 청사를 쓰기 때문에 보안이 더 강해진다. 또, 미주로 취항하는 경우 보안의 강도는 더 세져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출국 2시간 전에는 반드시 공항에 도착해야 비행기를 놓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필리핀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7107개의 매력이 있고 몇 가지 매력이 더 존재한다고 답한다. 그 중 가장 큰 매력은 섬 자체의 아름다움과 거리상의 아름다움(?) 이다. 김 지사장은 천국이라도 비행기로 24시간 걸린다면 국내 휴가 실태로 봤을 때 가기 어렵다고 말하며, 필리핀은 천국까지는 아니지만 3시간 30분이면 최고의 휴양지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덧 붙여, 영어가 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에 FIT여행객도 걱정 없이 즐기고 갈 수 있다 말했다. 추천 리조트를 묻자 망설이지 않고 콜론섬을 꼽는다. 거대한 사파리와 근처의 카누 타기 좋은 망그로브 군락까지, 금강산을 바다에 넣으면 이런 모양일 것이라 칭찬이 자자하다. 온천욕도 즐길 수 있어 자연의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망그로브 군락 주변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환경보전 지역으로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필리핀 그대로를 즐길 수 있다. 김 지사장은 아직은 아니지만 개발이 된다면 이 곳 주변이 가장 각광 받을 것이라 자신한다.

김기태 지사장은 필리핀에서 음식 문화와 스파와 마사지는 꼭 체험하라고 강력히 권한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지배에서 400년 가까이 통치를 받아 스페인 다음으로 스페인 요리를 잘 하는 지역이다. 씨푸드도 좋지만 동남아 어느 곳에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 요리를 권한다. 가격도 저렴해서 마음것 먹어도 부담이 없다. 추천 메뉴는 우리가 잘 아는 대표메뉴 빠에야와 우설 스테이크로 우설 스테이크는 치감이 뛰어나고 맛 또한 아주 좋다고 한다.

유의할 점으로는 스페인 요리는 하루 전, 최소 3시간 전에는 주문과 예약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리 시간이 길어서 바로 가서는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별로 없다. 스파와 마사지도 필리핀에서 빼 놓기 어려운 경험이다. 국내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가격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특히, 음식과 스파는 요즘 골드미스에서 각광 받는데,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서비스, 럭셔리한 분위기는 국내 강남의 샵이 부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 경관도 뛰어나 더 좋다는 반응이다.

유명한 곳은 마닐라와 큰 섬인데 소규모의 작은 섬에는 제대로 된 스파를 받기는 어렵다고 한다. 필리핀 여행의 적기로는 건기인 12월에서 5월까지를 추천한다. 이 기간 동안은 습기도 적어 여행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필리핀 항공의 특징 중 하나는 에어텔 상품을 직접 개발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이는 여행의 트렌드가 FIT로 넘어가는 것을 예상한 지사장의 솜씨, 치안이 불안하다고 하지만 알고 있는 것 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다른 혜택으로는 항공을 이용하는 승객에게 쿠폰북을 증정한다. 이 쿠폰북이야말로 알짜 필리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열쇄다. 각종 리조트와 호텔, 바, 음식점 등 필리핀에서 직접 검증한 곳들의 할인 쿠폰이 들어있다.

쿠폰 뒤에는 약도와 설명도 있어 초행자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필리핀의 관한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기를 당부했는데, 필리핀은 예전에는 향락 산업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선정적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곳은 없으며, 적발될 경우 가톨릭 국가 특성상 큰 낭패를 본다고 말했다.
7017가지의 멋을 가진 필리핀, 그 곳을 발굴해 한국에 알린 김기태 지사장의 역할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한국에서 필리핀은 그저 그런 여행지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질문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그의 말은 ‘부족함을 알자’, 정확히는 책을 읽자는 메시지다.

부족함을 알아야 배우고 싶고 책도 읽힌다는 그는 10년째 1주일에 2권의 독서량을 자랑한다. 1년 52주, 한 주 한 권의 책만 읽어도 한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말, 현재를 살며 현재를 보기 급급한 기자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첫 인상의 강함, 인터뷰 할 때의 묘한 편안함은 그의 깊은 내실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배우고 느낀 김기태 필리핀 항공 지사장과의 인터뷰, 그가 왜 한 분야의 대부가 됐는지 알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