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고도 하면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를 떠올린다 . 그곳에는 백제의 도시라 불릴 만큼 다양한 역사와 문화재가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익산 역시 백제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 공주나 부여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
익산은 백제 제 30 대 왕인 무왕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장이다 . 백제 무왕이 누구던가 . 신라의 선화공주와 국적을 초월한 전설 같은 순애보를 남긴 왕이다 .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백제의 또 다른 고장 , 익산에 묻혀 있는 백제 이야기를 만나보자 .
켜켜이 쌓인 시대의 흔적 ,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에는 백제의 궁궐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 있다 . 왕궁면 왕궁리다 . 왕궁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지명이 아닐까 ? 왕궁리에는 사적 제 408 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유적이 남아 있다 . 무왕 때 천도한 백제의 왕궁이었으며 ,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는 왕궁터에 사찰을 세운 독특한 유적이다 .
익산 왕궁리 유적의 발굴조사는 1989 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 그동안 동서 245m, 남북 490m 에 이르는 왕궁의 규모와 담장뿐 아니라 왕궁 내부의 건물지와 석축 ,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 금과 유리를 가공 · 생산했던 공방터 , 화장실 유적이 발굴되었다 .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 유적이다 . 삼국시대 최초의 화장실일 뿐 아니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모두 3 기의 화장실터 가운데 가장 큰 곳은 길이 10.8m, 폭 1.8m 에 이른다 . 화장실 유적에서는 회충 , 편충 등 기생충 알과 함께 독특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
일명 화장실 뒤처리용으로 불리는 뒷나무 , 즉 측주다 . 1,300 여 년 전 백제인들은 화장실에서 종이 대신 측주를 사용했는데 , 이 측주는 길이가 25~30cm 정도이며 , 끝부분이 둥글고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다 . 측주를 사용해 뒤처리를 하는 모습은 각자 상상에 맡긴다 .
왕궁리 유적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다 . 국보 제 289 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사찰이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 탑이 세워진 시기도 의견이 분분하다 . 시대가 어떻든 8.5m 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이 석탑은 왕궁리 유적을 사방으로 돌아가며 둘러봐야 제맛이다 . 특히 서편으로 해가 떨어질 때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석탑의 실루엣이 가히 장관이다 . 문의 : 왕궁리 유적전시관 , 063-859-4631, wg.iksan.go.kr
백제의 꿈 , 새롭게 태어나는 익산 미륵사지
익산 미륵사지는 어느 나라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3 탑 3 금당의 가람 배치를 하고 있는 백제 최대의 가람이며 ,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큰 석탑이다 .
익산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이후 조선시대까지 사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 조선 초만 하더라도 《 조선왕조실록 》 태종 7 년에 여러 고을의 복을 빌던 절을 명찰로 대신 지정하는 기록이 보이지만 , 조선 정조 때의 문인 강후진의 《 와유록 》 에 나오는 < 유금마성기 > 편에 " 미륵사는 100 여 년 전 폐허가 됐으며 , 7 층으로 남아 있는 석탑의 옥개석 위에 사람이 올라가 낮잠을 즐긴다 " 라는 내용이 나오는 걸로 봐서 미륵사의 폐사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
익산 미륵사지는 오랜 세월 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인 1915 년 보수와 함께 실측이 이뤄졌다 . 하지만 시멘트를 덕지덕지 바른 허접한 보수 공사에 불과해 오히려 흉측한 몰골로 남게 되었다 . 그 후 익산 미륵사지는 1974 년 동탑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1980 년부터 미륵사지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 1992 년 미륵사지 동탑 복원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
2001 년에는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복원이 결정되었다 . 복원된 동탑 옆에 서 있는 커다란 가설 덧집이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공간이다 . 석탑을 해체하는 데 무려 8 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 해체가 마무리될 무렵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 석탑 1 층 심주석 중앙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안기가 그것이다 .
특히 금제 사리봉안기에는 백제 왕후가 미륵사를 창건하고 탑을 세웠다는 기록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미륵사의 창건 배경과 창건자 , 건립 연대 등이 명확하게 규명되었다 . 하지만 늘 사실처럼 붙어 다니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거기에 없었다 . 금제 사리봉안기에 따르면 , 미륵사 창건을 발원한 사람은 좌평인 사택 적덕의 딸이자 백제 무왕의 왕후이기 때문이다 .
익산 미륵사지를 보려면 먼저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 1997 년에 개관한 이 전시관에서는 창건에서 폐찰까지 미륵사지의 역사뿐 아니라 1 만 9,000 여 점에 이르는 출토 유물 가운데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
금제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안기는 실물 크기로 복제해 전시하고 있으며 , 2000 년에 출토된 금동향로 ( 보물 제 1753 호 ) 도 만날 수 있다 . 미륵사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도록 관람로를 조성해 3 탑 3 금당의 가람 배치 , 2 기의 당간지주 , 연꽃무늬를 새긴 석등받침과 지붕돌인 옥개석 등 미륵사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문의 :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063-290-6799, www.mireuksaji.org
백제와 고려를 대표하는 2 기의 석불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은 익산을 대표하고도 남지만 , 놓칠 수 없는 2 기의 석불이 있다 .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익산 고도리 석가여래입상이 바로 그것 . 백제와 고려를 대표하는 석불로 오랜 역사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 두 석불은 각각 보물 제 45 호 , 제 46 호로 나란히 지정되었다 .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미륵사지에서 함열 방면으로 4km 도 채 떨어지지 않은 석불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
이 석불은 임진왜란 때 이곳을 거쳐 여산으로 가려던 왜군에게 영험함을 보이다 목이 달아났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 그래서인지 석불의 머리는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 인자한 부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둔중한 스님의 모습이다 . 하지만 3m 가 넘는 광배와 굵직하게 새겨진 광배의 다양한 문양이 자못 볼 만하다 .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과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잇는 7 세기 무렵의 백제 석불이다 .
왕궁리 유적 인근에는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2 기의 석불이 200m 정도 거리를 둔 채 서로 바라보고 있다 . 두 불상은 각각 남자와 여자라고 전해지는데 , 평소에는 바라만 보고 있다가 음력 12 월에 옥룡천이 얼어붙으면 만나서 그동안 못다 나눈 정을 나누다 새벽닭이 울면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 두 석불은 봉분 위에 세워져 있으며 , 쓰러져 있던 것을 조선 철종 때 익산 군수가 세웠다고 한다 . 동쪽 석불 옆에는 석불중건기가 함께 세워져 있다 .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 익산 TG → 우측 방면 무왕로 (720 번 지방도 ) → 금마사거리에서 우회전 → 금마면 소재지에서 미륵사지 방면 좌회전 (722 번 지방도 ) → 익산 미륵사지
호남고속도로 → 익산 TG → 우측 방면 무왕로 (720 번 지방도 ) → 금마사거리에서 좌회전 → 궁성로 ( 약 1.7km) → 왕궁리 유적
* 대중교통
서울 → 익산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에서 매일 38 회 (05:30~23:20) 운행 , 2 시간 50 분 소요
용산역 – 익산역 (KTX 매일 25 회 , 새마을호 매일 13 회 ) 운행
대전 → 익산 :
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에서 매일 4 회 운행 (8:10, 9:20, 12:50, 18:10), 1 시간 20 분 소요
서대전역 – 익산역 (KTX 매일 25 회 , 새마을호 매일 13 회 ) 운행
부산 → 익산 :
동부 ( 노포동 ) 버스터미널 (1688-9969) 에서 매일 7 회 (07:30~19:00) 운행 , 3 시간 30 분 소요
※ 익산 미륵사지로 가려면 평화삼거리 또는 역전 정류장에서 41 번 , 60 번 버스를 타면 된다 . 익산 왕궁리 유적은 같은 정류장에서 65 번 버스를 타면 된다 .
2. 맛집
미륵산순두부 : 금마면 기양리 / 순두부 / 063-836-8919
진미식당 : 황등면 황등리 / 한우육회비빔밥 / 063-856-4422
한일식당 : 황등면 황등리 / 한우육회비빔밥 / 063-856-4471
본향 : 신동 / 마약밥정식 / 063-858-1588 / www. 마약밥 .kr
3. 숙소
익산 비지니스관광호텔 : 인화동 / 063-853-7171 / www.iksanbusinesshotel.kr
그랜드관광호텔 : 평화동 / 063-843-7777
미륵사자연학교 : 삼기면 연동리 / 063-858-2580 / www.mireuksan.com
왕궁온천 : 왕궁면 온수리 / 063-291-5000
글 , 사진: Ⓒ 문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