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재 기자 ㅣ 미디어원
대만이 한국 정부 전자입국신고서(e-Arrival Card)의 국가 선택 항목에 표기된 ‘중국(대만)’ 표현을 문제 삼으며 정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이 이를 즉각 수정하지 않을 경우 자국 내 공식 문서에서 한국을 ‘남한’으로 표기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히면서, 단순 행정 문제로 보였던 사안이 외교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의 국가 선택 항목에서 대만이 ‘중국(대만)’으로 표시된 점이다. 대만 외교부는 이를 “부적절한 표현”으로 규정하고 지난해 말부터 수차례 시정을 요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일정 시한까지 제시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사안은 갑작스럽게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대만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외교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고, 최근 들어 공개 대응으로 전환했다. 한국에는 행정적 표기일 수 있지만, 대만은 이를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논란이 커진 배경에는 국가별 표기 방식의 차이가 있다. 미국과 일본은 입국 시스템과 비자 문서에서 대체로 ‘Taiwan’을 단독 표기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 일부 행정 시스템에서는 ‘중국(대만)’이라는 표현이 유지되고 있어, 대만 입장에서는 “왜 한국만 이 표현을 쓰느냐”는 문제 제기가 가능해진 구조다.
다만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 관계와 경제적 연관성을 고려해 보다 신중한 표현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이번 논란은 표기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적 균형과 정치적 메시지가 충돌한 결과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대만의 대응 방식 역시 주목된다. 중국이나 미국이 아닌 한국을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점에서 ‘선택적 외교’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동시에 과거 긴밀했던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에 대한 기대치가 반영된 행동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는 행정적 선택일 수 있지만, 대만에는 존재를 규정하는 문제다.
그리고 그 간극이 지금 외교 충돌로 드러나고 있다.
■ [용어 설명]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왜 ‘Chinese Taipei’로 불리나
대만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와 일부 국제기구에서 ‘Chinese Taipei(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대만이 스스로 선택한 이름이 아니라,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속에서 형성된 국제사회의 타협적 결과다.
1970년대 이후 중국이 유엔과 주요 국제기구에서 대표권을 확보하면서 대만은 ‘중화민국’이나 ‘Taiwan’이라는 국호로 국제무대에 참여하기 어려워졌다. 이후 198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합의를 통해 대만은 국기와 국가 사용을 제한받는 대신 ‘Chinese Taipei’라는 이름으로 참가하게 됐다.
현재까지도 대만은 이 명칭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제기구 내에서의 제한적 사용이다. 각국의 입국 시스템이나 행정 문서에서 ‘Taiwan’으로 표기하는 문제는 별개의 사안으로, 대만은 이를 자국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 [배경] 한국과 대만, 왜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나
한국과 대만의 관계는 단순한 외교 관계를 넘어선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냉전 시기 한국 사회에서 ‘중국’은 지금의 중국이 아니라 대만, 즉 ‘자유중국’을 의미했다. 반대로 중국 본토는 ‘중공’으로 불렸고, 양국은 반공 진영의 핵심 축으로 군사·외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는 이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한국은 베이징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타이베이와 단교했고,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고립을 겪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감정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현재 양국은 관광과 경제 교류가 활발하지만, 과거의 관계 단절 경험은 여전히 민감한 요소로 남아 있다. 대만이 ‘중국(대만)’과 같은 표기에 강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 문제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