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이 뚫려도 징계는 없다… ‘벨트 방어’라는 이름의 공백, 그리고 6천 명의 최전선

책이 뚫려도 징계하지 않는 ‘벨트 방어’ 개념이 공식 문서에 등장하면서 GOP 병력 2만2천 명을 6천 명으로 줄이겠다는 국방 개편안이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단순한 병력 감축이 아니라 방어 개념 자체의 변화라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250m에 달하는 경계 공백, 전력·통신 단절 위험, AI·드론 기반 전력의 실전 편제 부재까지 겹치면서 “개혁이 아닌 안보 실험”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DMZ GOP 철책 순찰 군인 야간 경계 병력 감축 벨트 방어 논란 이미지
혹한의 GOP 철책 앞을 순찰하는 장병들. 병력 감축과 ‘벨트 방어’ 개념이 적용될 경우, 최전방 경계 밀도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만재 기자 ㅣ 미디어원

철책이 뚫려도 지휘관을 징계하지 않겠다는 경계 개념이 공식 문서에 등장했다. 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방한계선 철책까지 침투하더라도, 이후 책임지역 안에서 추격·차단·섬멸하면 경계 실패가 아니라는 논리다.

동시에 최전방 GOP 경계 병력 2만2천 명을 6천 명으로 감축하고, 나머지 1만6천 명을 후방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 제시됐다. 국방부는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논쟁의 본질은 시점이 아니다.

지금 제시된 이 구조가 과연 성립 가능한가, 그리고 이 구조로 국가를 지킬 수 있는가라는 근본 질문이다.

■ 징계 완화라는 가면 뒤에 숨은 ‘방어 기준의 붕괴’

이 문제를 징계 완화라는 행정 조치로 읽는 순간 본질을 놓친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징계 기준의 조정이 아니라 방어 기준의 붕괴다. 과거에는 적이 철책까지 내려오는 순간 그것은 명백한 경계 실패였고 해당 부대 지휘관은 반드시 책임을 졌다. 수십 미터 간격에서도 적의 숨소리를 놓칠까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철통 경계를 유지해온 것이 한국군의 최전방 실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철책이 뚫려도 이후에 처리하면 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선을 지키는 방어에서 들어온 적을 처리하는 방어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념의 진화가 아니라 기준의 완화이며, 방어의 강화가 아니라 공백의 관리다. “2040년까지”는 해명이 아니라 유예일 뿐이며, 지금 제시된 구조 자체가 성립 가능한지에 대한 검증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 박진·안규백·임종득·김용현, 20년의 구호와 1980년대의 현장

이 발상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짚어야 한다. 수십 년 전부터 정치권과 군 내부에서 선형방어의 한계, 병력 절감, 과학화 경계 전환 필요성이 반복해서 제기돼 왔다.

박진 전 의원은 GP·GOP 철수와 감시체계 전환을 주장했고, 임종득 전 안보실 2차장은 선(線) 개념에서 벨트(belt) 개념으로의 전환과 AI·드론 중심 경계작전을 제시했으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역시 작전 개념 전환의 필요성에 동의한 바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제기돼 온 주장이라면, 지금 쯤은 병사·드론·로봇이 결합된 실전 편제, 단계별 검증 결과, 전력화 일정표, 통신 두절 상황 대비책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됐어야 했다. 그러나 안규백 국방장관이 내놓은 현실은 “줄이겠다”는 숫자와 “AI로 보완하겠다”는 구호뿐이다. 말은 20년을 이어왔지만 전장은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현재 GOP·GP 초소 상당수는 1980년대 초반 장병들이 자갈과 시멘트를 직접 짊어지고 올라가 건설한 구조물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그 콘크리트 초소 구조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 안에 배치하는 사람만 줄이겠다는 발상은 구조적 모순 그 자체다.

■ 전장을 모르는 자들의 탁상공론과 ‘250m의 절벽’

이 논의를 주도하는 인사들이 최전방 GOP·GP의 실전 조건을 몸으로 겪어본 경험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 결함이다. 최전방은 숨을 곳이 없는 완전 노출 전장이며, 일부 구간은 남북 간 거리가 700m도 채 되지 않는다.

평시에도 실탄이 장전된 상태로 운용되며, 병사들은 수류탄을 휴대한 채 전투 상태로 투입된다. 지형, 기상, 사각지대, 야간의 공포를 단 하루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이렇게 가볍게 말할 수 없다.

이 구조를 숫자로 검증하면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6천 명을 2인 1조로 나누고 3교대 체계를 적용하면 동시간대 실제 투입 가능한 병력은 약 1천 개 조다. 이를 155마일(249,000m) 전선에 배치하면, 한 조가 담당해야 할 전방 거리는 약 250m에 달한다.

현재 수십 미터 간격에서도 경계 유지가 버거운 상황에서 250m 간격은 사실상 공백 선언이다. 교육, 휴가, 파견 인원까지 제외하면 실제 투입 밀도는 더 떨어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수백 미터를 병사 한 명이 홀로 책임지는 상황, 이건 계획이 아니라 안보 자해다.

■ 전력·통신 단절 시의 대참사: ‘유선 국방’의 아킬레스건

현재의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철책을 따라 설치된 광망(광케이블)과 CCTV 중심의 유선 체계다. 적의 도발로 전기가 끊기거나 케이블이 절단되는 순간 시스템은 즉각 마비된다. 전원이 차단된 극한 상황에서 로봇 병사와 AI 드론, 인간 병사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통신하고 작전을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독립형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나 비상 무선 통신망 대책은 전무하다.

지형적 한계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양구·화천·인제의 험산준령은 기상 악화 시 헬기가 뜨지 못하고 도로망이 협소해 기동 부대 투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방을 비우고 후방에서 기동 대응하겠다는 구상은 지형을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자들의 탁상공론이다.

파주에서 서울까지 기갑부대로 30분 거리인 현실에서, 1차 저지선이 무력화된 이후 주력 부대가 전개될 골든타임(24~48시간) 확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 AX(AI Transformation) 실전 편제의 부재: 개혁인가 무책임인가

정상적인 정책이라면 과정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 예를 들자면 2010년부터 어떤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개발됐는지(TRL), 2030년까지 기술 개발을 완료해 2035년까지 특정 구역에서 수년간의 실전 리허설을 거쳐 100% 신뢰성을 검증하겠다는 등의 명확한 로드맵이 먼저 나와있었어야 비판의 여지가 줄어든다.

핵심은 구체적인 전술 편제(Unit)다. 몇 명의 병사가 몇 대의 드론과 결합하고, 몇 대의 피지컬 AI(로봇 병사)와 연결될 것인가가 수치로 제시돼야 한다. 로봇 병사는 고정 초소 사수, AI 드론은 입체적 관측병, 인간 병사는 AX 시스템을 통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지휘 통제자 — 이 역할 분담이 실전 편제로 정립돼야 한다.

병력을 줄이기 전에, 초소를 어떻게 보강하고 드론 공격에 대비한 상부 방호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병사를 지킬 장치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이건 개혁이 아니라 실험이며, 그 실험의 비용은 고스란히 최전방 장병들이 치르게 된다.

■ 결론: 비워도 지켜지는 공간은 없다

이 논의의 핵심은 하나다. 이것은 징계 문제가 아니라 구조 문제다. 철책이 뚫려도 된다는 개념이 등장하는 순간, 방어선은 이미 뚫린 것이다. GOP와 GP는 전쟁 발발 즉시 1차 타격 대상이 된다. 위험은 그대로인데 대응 능력만 줄어든 상태에서, 전방의 6천 명은 사지에 내던져지는 꼴이다.

최전방은 비워도 지켜지는 공간이 아니다. 끝까지 버텨야 비로소 유지되는 공간이다. 국방은 화려한 기술 마케팅이 아니라 치밀한 전술 편제와 꺾이지 않는 기강으로 싸우는 것이다. 안보 수장들이 실전적 설계도 없이 병력부터 덜어내는 한, 휴전선은 벨트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서서히 옥죄는 올가미가 될 뿐이다.

[미디어원 심층분석1] 안규백의 안보 도박: 휴전선 병력 22,000명에서 6,000명으로 감축, 나머지 16,000명은 후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