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 ㅣ 김미래기자
임무를 마친 뒤 흔적 없이 스스로 사라지는 로봇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위험 지역이나 좁은 배관 내부에서 임무를 수행한 뒤, 외부 명령에 따라 빠르게 분해되는 차세대 소프트 로봇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강승균 교수 연구팀은 자기장 모드 전환만으로 로봇의 움직임과 수명 종료를 선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자성 소프트 로봇 소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재료과학 분야 학술지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게재됐다.
이번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의 자기장 시스템 안에서 움직임과 소멸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점이다. 기존 자가소멸형 소재는 작동과 분해를 위해 서로 다른 자극 장치가 필요했지만, 서울대 연구팀은 단일 자기장 체계만으로 두 기능을 모두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DC 자기장으로 움직이고, AC 자기장으로 사라진다
연구진이 개발한 자성 실리콘 엘라스토머 소재는 직류 자기장에서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처럼 작동한다. 자기장 방향과 세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로봇 형태가 변형되며 좁은 공간에서도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다.
반면 기가헤르츠 대역의 교류 자기장을 가하면 소재 내부 자성 나노입자가 특정 주파수에서 강하게 반응하며 순간적으로 열을 발생시키는 강자성 공명 기반 자기열 효과가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소재 온도는 1초 안에 200도 이상으로 급격히 상승하며 빠르게 분해가 이뤄진다.
배관 청소·재난 탐사·보안 장비까지 활용 가능
지금까지 재난 현장, 배관 내부, 밀폐 구조물, 위험 지역 등에서는 로봇을 투입하더라도 회수 문제와 오염, 장비 손상 문제가 뒤따랐다. 특히 좁은 산업용 배관이나 원전·화학시설 같은 위험 지역에서는 회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번 기술이 상용화되면 막힌 파이프 내부를 청소하거나 상태를 점검한 뒤 임무 완료와 함께 스스로 소멸하는 로봇 구현이 가능해진다. 재난지역 탐사 로봇 역시 회수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군사·보안 분야 활용 가능성도 주목된다. 임무 수행 후 자동 소멸하는 전자장치나 탐지 장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보안형 센서 개발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강점도 눈길을 끈다. 이번 소재는 분해 기능을 갖추면서도 460퍼센트 이상의 높은 연신율을 유지했다. 원래 길이의 약 5배 이상 늘어날 만큼 유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강승균 교수는 소프트 로봇의 구동과 소멸을 자기장으로 통합 제어하는 자성 엘라스토머를 개발했다는 데 연구의 의미가 있다며, 회수가 어려운 환경에서 활용 가능한 차세대 소프트 로봇과 보안형 전자소자 등 다양한 분야 응용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영화 속 상상이었던 임무 후 사라지는 로봇이 이제는 연구실을 넘어 산업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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