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종일 바쁜 일상에 쫓겨 허덕이다가 , 어스름한 해질녘 퇴근길 텅 빈 가방 하나들고 나서면 옛 추억에 문득문득 빠져든다 . 그렇게 오늘도 내 추억으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
난 서울 한복판 , 신촌 한옥 촌에서 태어났다 . 몸이 유달리 약했고 그 시절 갓난아이들이 많이 앓던 경기 ( 驚氣 ) 라는 걸 하루에도 여러 차례 치르면서 외할머니 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
물론 내가 외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2 년 후 , 어린자식 혼자 떼어놓고 지내실 수 없었던 부모님은 온 식구들을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더부살이는 시작되었다 .
외가댁은 4 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다 . 위로 외증조모님과 외할머니 , 큰 외삼촌네 5 식구와 작은 외삼촌네 5 식구 그리고 우리 집 5 식구가 한 기와지붕아래 함께 살았다 .
외사촌 오빠 여섯 명에 , 친오빠 두 명이 나의 천군만마로 동네 어느 누구도 나를 건드리거나 때릴 수는 없었다 . 뛰어다니며 노는 것 또한 선머슴은 저리가라 할 지경이었고 그 당시 남자아이들이 했을 법한 일은 다 하며 이산 저산을 뛰어다녔었다 .
그러면서도 집안에 여자아이는 당시 유일하게 혼자였기에 마치 공주처럼 예쁨을 받았었지만 , 하는 짓이 워낙 풀어놓은 망아지라 하루도 사고를 치지 않고 넘기는 날이 없었다 .

시골은 여전히 씨족사회의 모습처럼 옆집이 고모할머니집이고 , 건넛집은 아재집 , 앞집은 아지매집이다 . 온 동네 사람들이 친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안에 일이 있거나 잔치가 있으면 그게 곧 동네 일이 되고 잔치가 된다 .
시골에서는 5 월 초가 되면 논에 못자리를 걷어 모심기를 한다 . 내 나이 여섯 살 즈음인 70 년대 말에는 지금처럼 농기계가 있지 않고 일일이 사람의 손이 필요한 시기였다 . 사실 굶는 아이들도 많았고 얼굴과 손은 사계절 내내 거북이 등짝처럼 터있었다 . 그날도 그런 내 동무들과의 하루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이었다 .
여섯 명의 또래 친구들은 이른 아침이면 마당 쓸고 , 돼지밥 주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아침 댓바람부터 남의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서서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바라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콧물을 손등으로 비비고 훔쳐 늘 한쪽 볼에는 허연 콧물자국이 있었고 , 빗질 못한 머리카락은 엉겨 붙어 새집이 지어져 있었다 . ‘ 오늘은 무슨 좋은 건수가 없나 ’ 하는 마음으로 담벼락에 기대어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데 우리 집 논에 모심기를 한다고 동네 사람들이 들썩이는 것이다 .
그날의 주인공은 나였다 . 왜냐면 다른 집이 아닌 우리 집에 일이 있기 때문에 뭐든지 내 맘대로 친구들을 부릴 수 있고 데리고 다니며 심부름 시킬 수 있는 힘이 , 그날만큼은 내게 있기 때문이다 .
쌀이 귀한 시절이라 여섯 명이 한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나면 여지없이 그날 저녁엔 동네가 떠들썩하게 아이 잡으러 다니는 아줌마의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난다 . 그래서 가능하면 아침은 집에서 각자 해결을 하고 점심은 우리 동네나 건넛마을에 잔치가 있는지 아니면 초상집이 생겼는지 또는 마을 계모임이 있는지 살펴 해결하는데 , 우리 집 모내기를 하는 날이니 새참이며 중참까지 다 해결이 되는 운수좋은날이다 .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세상에서 제일 기쁘고 흥분되는 날인 것이다 .
대장마냥 아이들을 이끌고 논으로 가져다 날라야 할 짐들을 소달구지에 싣고 , 그 위에 올라타 30 여분 거리의 논으로 향한다 . 나와 14 살 차이가 나는 큰 오빠는 나를 맹꽁이라고 불렀다 . “ 맹꽁이 , 니는 내랑 자전거 타고 가자 . 내가 짐자전거 빌려왔다 .” 신나는 날이다 .
친구들은 소달구지에 짐짝실어 보내듯 보내고 난 큰오빠의 짐자전거에 올라타면 자전거는 가는 내내 돌부리에 덜컹거린다 . 엉덩이 꼬리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까르륵까르륵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절이 그때였다 .
저 멀리 산길을 뚫어 만든 신작로의 고개가 보인다 . 저 고개만 넘으면 오늘 모내기를 한다던 우리네 논이 있다 .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온 동네 사람들과 먼저 출발한 친구들이 보이고 논두렁은 벌써 잔치 분위기이다 . 새참도 먹고 , 더운 날 쉴 수도 있는 천막아래 벌써 웅성웅성 무언가 재미난 일이라도 있는 듯 사람들이 모여 있고 친구들은 빨리 오라고 연신 손짓을 한다 .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빨리 좀 가라고 오빠의 등짝을 두들기지만 가파른 논두렁길을 내려가던 자전거는 좀처럼 움직이려 하질 않고 난 뒤에서 발을 퉁기며 안달이 났다 .
“ 맹꽁이 니 가만 안 있을래 ? 확 ~ 그냥 논에다 버리삔다 . 응 ”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묵직한 짐자전거가 가파른 논두렁 아래로 굴렀다 . 순간 난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오빠의 말을 빌리자면 , 난 자전거 뒷자리에서 일어나 오빠의 머리를 흔들며 빨리 가기를 재촉했고 , 이에 중심을 잃은 자전거가 논두렁을 구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 내동댕이 쳐진 자전거와 난 모내기를 다 마친 남의 집 논 한가운데 머리가 곤두박질쳐져 박히고 , 다리는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 상상을 해보면 인간 모자리가 된 것이다 .

눈을 떴을 때 코와 입안은 전부 진흙투성이였고 , 머리는 논바닥에서 뽑은 모양 그대로 뾰족탑을 하고 말라 있었다 .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은 “ 야이야 , 니 때문에 돼지네 논농사 다 망쳤다 . 큰일 냈다고 순사 온단다 . 니 우짤래 ?” 라며 놀리기도 하고 “ 문디 , 가지가지 한다 . 참말로 …… .” 라며 진흙 범벅이 되어 있는 나를 야단치시기도 했다 .
그러나 내겐 남의 집 논농사 망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 이틀 전 , 울 할매가 장날에 사다주신 꽃고무신이 자전거 뒷바퀴에 걸려 찢겨진 게 더 큰 슬픔이었다 . 이틀 동안 방안에서만 신고 다니다가 오늘 우리 집 모내기 한다는 이야기에 특별히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신고 나온 꽃고무신인데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선도 못 보이고 찢어졌으니 이보다 더 기가 막힐 일은 내게 없는 것이다 .
내가 찢겨진 고무신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시작하자 친구들은 내 주위를 삥 둘러 앉아 원숭이 털 고르기라도 하듯 머리에 붙은 진흙을 떼어 주었다 . 지금은 그런 꽃고무신은 시골 장터를 가도 찾기 힘들지만 그때는 고무신 코앞에 꽃 한 송이 그려지면 동네가 들썩일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다 . 추석빔을 얻어 입을 때까지 난 엄지발가락이 밀려나오는 낡은 신을 신고 있어야 하는 억울함에 더 목 놓아 울었던 것 같다 .
예전 모내기의 모습은 논 양쪽에서 못줄을 잡고 일직선을 만들면 어른들이 두세 포기의 모를 못줄에 맞추어 심어나가는 식이었다 . 모심는 중간에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흥을 돋워가며 일을 했다 .
나이가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모를 날라다 주었고 좀 나이가 들어서 학교를 가기 시작한 아이들은 양동이 하나에 삽을 들고 미꾸라지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제 역할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 일은 하지 않지만 간섭하고 지시하느라 하루가 바쁜 아저씨도 계시고 , 천막 그늘아래서 하루 종일 ‘ 바다가 육지라면 ’ 을 부르며 막걸리 주전자를 담당하던 아줌마도 있었다 .
논두렁 여기저기에 앉아 새참 국수 한 그릇과 열무 보리비빔밥 한 그릇을 먹던 그 맛은 내 평생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추억의 맛이 되었다 . 산해진미를 다 가져다 주어도 그날의 국수 한 그릇과 보리밥 보다 맛이 있을 순 없을 것이다 . 그때는 장화도 흔하지 않아 모를 심는 내내 거머리를 떼어내고 쑥을 찧어 발라가며 일을 했었다 .
요즘을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논바닥에는 미꾸라지며 거머리 , 고동 같은 많은 것들이 있었다 . 그래서 아이들이 오전부터 미꾸라지며 고동을 잡아두면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돌 위에 솥을 걸쳐 놓고 추어탕을 끓여 일하는 사람들의 중참을 주었었다 . 당연히 일등공신은 우리들이라 먹는 중간 중간 미꾸라지 잡았던 이야기를 , 심해의 상어라도 잡은 무용담인양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우쭐거렸었다 .
그렇게 온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를 하고 함께 일을 하며 , 봄 햇살에 그을려 새까맣던 이웃들이 또 내 동무들이 그립다 . 지금은 곳곳에 흩어져 가끔 다른 이들을 통해 소식을 들을 뿐이지만 내 추억 속에서는 영원히 함께 그 모습 그대로 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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