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기자 ㅣ 미디어원
미국의 주독미군 5000명 철수 결정은 유럽 안보 논쟁을 다시 불러냈다. 미 국방부는 독일 주둔 미군 약 5000명을 앞으로 6개월에서 12개월 안에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독일에는 약 3만5000명에서 3만6000명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일부 감축이다. 그러나 독일은 유럽 내 미군 지휘, 군수, 공중작전의 주요 거점이다. 주둔 병력 일부가 줄어드는 일이라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이번 결정의 공식 명분은 유럽 내 미군 배치 재검토다. 미국은 작전 지역의 필요와 현지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 조치를 단순한 군사 효율화로만 보지 않는다. 독일 정부가 미국의 이란전 대응을 비판한 뒤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이 커졌고, 그 직후 주독미군 감축 명령이 나왔기 때문이다. 병력 감축이 동맹국에 대한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쓰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사안을 “미국이 빠지면 큰일”이라는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더 따져봐야 할 것은 독일의 준비 상태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미국의 군사 지원을 줄이고도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다.

돈만 보면 독일의 군비 확장은 가능하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규모 방위기금을 마련했고, 국방비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27년 핵심 군사비를 1058억 유로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별 방위기금과 우크라이나 지원까지 포함한 방위 관련 지출은 더 커질 수 있다.
독일은 나토 핵공유 임무를 맡던 토네이도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F-35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한때 독일 정치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졌던 재무장 논의는 이제 공개 정책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예산을 늘리는 일과 강한 군대를 만드는 일은 다르다.
전투기는 살 수 있다. 방공망도 들여올 수 있다. 군수공장도 늘릴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실제 병력이 있는가. 예비군이 준비돼 있는가. 장기전을 견딜 사회적 합의가 있는가. 젊은 세대가 군 복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독일의 재무장은 장비 목록에서 멈춘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오랫동안 “군사대국이 되지 않는 경제대국”으로 살아왔다. 안보는 미국과 나토가 맡고, 독일은 제조업과 수출, 재정 안정에 집중했다. 이 방식은 독일 경제의 성공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독일 사회에 강한 반군사 정서를 남겼다. 해외 군사개입에 대한 거부감, 병역에 대한 거리감, 군을 정치 전면에 세우지 않으려는 문화가 깊다.

그 현실은 최근 병역 논의에서도 드러난다. 독일에서는 새 병역제 논의가 본격화되자 양심적 병역거부 신청이 늘고 있다. 유로뉴스는 독일에서 2026년 1분기 양심적 병역거부 신청이 2656건으로, 2025년 전체 신청 건수의 3분의 2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만으로 독일 청년 전체가 군 복무를 거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방비를 늘리는 일과 병력을 확보하는 일 사이에 큰 거리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독일은 러시아 위협을 모르는 나라가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은 국방비를 늘리고 군 현대화를 추진했다. 프랑스, 폴란드, 발트 3국, 북유럽도 미국 의존을 줄이고 자국 방위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더 자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말을 앞세우는 것과 실제 전력을 갖추는 것은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이 첨단무기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포탄, 드론, 방공망, 정비 인력, 의무병, 예비군, 후방 보급, 사회 전체의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독일이 유럽 최대 경제국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런 조건이 자동으로 갖춰지지는 않는다.
주독미군 철수는 독일에 더 큰 자율성을 주는 동시에 더 무거운 부담을 안긴다. 미국 의존이 줄어들면 독일은 유럽 안보 문제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비용이 따른다. 국방비 증액, 병력 확충, 탄약 비축, 방공망 강화, 사이버 방어, 에너지 안보, 기지 방호까지 모두 독일이 직접 챙겨야 한다. 미국이 빠진 자리를 말로 채울 수는 없다.
유럽 자주국방론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미국 의존을 줄이고 유럽이 독자 방위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와 발트 3국, 북유럽도 국방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 하나의 군사 단위로 움직일 수 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각국의 위협 인식, 예산 구조, 방위산업 이해관계, 병역 문화가 다르다. 미국을 비판하는 일보다 유럽 내부를 실제 전력으로 묶는 일이 더 어렵다.
러시아가 노리는 것도 이 대목이다. 러시아는 미군 5000명 감축만으로 독일을 공격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을 끝까지 지키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 러시아에는 유리하다. 나토의 힘은 병력 숫자만이 아니라 미국이 실제로 개입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 믿음이 약해질수록 러시아는 유럽 내부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
독일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미국에 계속 기대면서 안보 부담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유럽 방위의 중심국을 자처하며 비용과 병역, 군사문화의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후자를 택하려면 독일 사회는 불편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돈을 쓰는 것만으로는 군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군사력은 예산과 산업, 병력과 의지, 정치적 결단이 함께 움직일 때 현실이 된다.
주독미군 5000명 철수는 독일에 독립의 기회를 준 사건이 아니라, 미뤄왔던 안보 부담을 현실로 꺼낸 사건이다. 독일이 병력 부족과 반군사 정서를 바꾸지 못하면 막대한 국방비를 쓰고도 강한 군대를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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