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는 제46회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자 제26회 골든호스 그랑프리 수상작이다. 작품 무대를 취재하기 위해 12월 타이완을 방문하여 타이베이, 지우펀, 기륭, 까오숑 등을 다녔다. 영화의 작품 무대 중 한 곳인 타이베이는 타이완의 수도이다. 타이완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 관광의 중심지로, 고층건물과 호텔 등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다. 청나라 때 건설된 오래된 성곽과 사원, 전통적인 누각, 한약방 등도 자리한다.
영화 ‘비정성시’는 1947년 벌어진 2.28사건을 배경으로 한 가정의 몰락을 담고 있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2.28사건은 1947년 2월 27일 시장에서 당시 판매금지품인 담배를 팔던 할머니를 정부 직영 전매국 직원이 체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세금이 붙지 않은 담배를 판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를 무차별 폭행하는 정부 직원들의 모습을 본 시민들이 항의했다. 그 이튿날인 2월28일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평소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불만이 많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장개석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이들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이때 많은 시민들이 투옥되거나 사살되었는데 그 숫자가 2만 명 전후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장개석 총통이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타이완 정부는 전국 각지에 2.28 기념탑과 기념관을 건립하고, 진상규명, 유가족 보상을 했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228 화평공원를 찾아갔다. 공원 내에는 228기념관이 있는데 밖에는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 묵념하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1층에는 2.28사건이 벌어지게 된 계기와 배경, 과정들이 기록물로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2.28사건 당시 신문 보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비정성시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여인의 진통 소리와 이어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부터 시작된다. 타이완의 지룽(基隆)에서 일흔 다섯 살의 임아록(李天祿) 노인은 작은 식당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이자 장사를 하는 문웅, 의사로 일본 군의관으로 나갔다가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문상, 정신병을 앓고 있으면서 행동이 불량한 문량,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문청이다.
막내인 문청은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절친한 친구인 오관영과 함께 살고 있다. 문청은 오관영의 누이동생인 간호사인 관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첫째 문웅과 셋째 문량은 상해에 본거지를 둔 범죄 조직의 유혹으로 밀수에 손을 댔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문량은 석방되지만 고문으로 폐인이 된다. 2.28사건이 터지자 넷째 문청의 친구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실종되고, 문청도 옥살이를 한다. 큰형이 상해 깡패들에 죽자 문청은 임씨 집안의 유일한 남자가 된다. 감옥에서 석방된 문청은 관미와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까지 낳지만, 그 역시 당국에 체포되어 생사불명이 된다.
참혹한 시대상을 표현한 비정성시는 대만 영화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연출했으며,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양조위가 벙어리 사진사 역으로 출연했다. 격동의 현실 속에 양조위가 맡은 역은 사회에 울분을 느끼지만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인 양조위는 이렇다 할 저항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삶을 표현한다.
존제궁(尊濟宮)은 지룽 시내 묘구 야시장 부근에 있는 사원으로 불교와 도교을 믿는 사람들의 출입이 많다. 자녀들의 수난에 임아록 노인도 자주 방문해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내부에서는 경건하게 향을 피우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본전에는 다양한 신들이 모셔져있다. 지롱역 부근은 옛날부터 번화가로 좁은 골목양측에 상점들이 줄지어있다. 묘구야시(廟口夜市)는 낮에도 영업하고 있으나 북적거리는 것은 저녁 이후다. 구분과 금과석 같은 관광지도 부근에 있다.
지우펀(九份)은 영화 비정성시를 촬영한 후 유명해진 곳으로 과거 금광도시였다. 타이완의 옛 정취를 담고 있는 지우펀은 타이베이에서 기차나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1920~30년대에 아시아 최대의 금광도시라고 불렸던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골드러시에 들끓어 번성했지만, 폐갱 후 쇠퇴해갔다.
그러다가 다시 각광을 받은 것은 비정성시라는 영화가 상영되어 관광지로서 알려지게 된 다음부터이다. 이 영화의 영향으로 옛 생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상점도 많이 생겼다.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에는 찻집들이 많으며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 옛날 9집밖에 없는 작은 마을에서 물건을 거래할 때 항상 9집 것을 구입했다고 하여 지우펀 九份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슈치루(豎崎路)는 길게 이어진 돌계단의 작은 길로 지우펀 제일의 볼거리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지샨지에(基山街)의 도중에 밑을 향해 연결된 긴 계단길이 구분의 상징적인 길로 널리 알려진 슈치루(豎崎路)이다. 이곳에는 다예관과 찻집 등이 겹겹이 늘어서 있으며 오픈테라스의 좌석을 준비하고 있는 곳도 많다. 차를 즐기면서 멋진 조망을 만끽할 수 있고 오래 앉아 있어도 주인이 불평을 하지 않아 좋다. 차뿐만 아니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여러 곳이다.
슈치루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영화 촬영장소이기도 한 아매다주관(阿妹茶酒館)이 나타난다. 빨간 간판의 다예관으로, 우롱차와 타이완 특유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였던 2층에선 주위의 산과 먼 바다가 잘 보인다. 간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도 많다. 구분노면점(九份老麵店)은 영화 ‘비정성시’에도 등장했던 곳으로, 면 종류가 메인인 레스토랑으로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12시부터 영업하며 주인이 친절하다. 인기 있는 요리는 우육면과 완탕 등이다.
이이팔 화평공원(二二八 和平公園)은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공원으로, 일본 통치 시대인 1899년에 타이완에선 처음으로 서양식 공원으로 개장한 곳이다. 이이팔 기념관도 있는 이 공원은 6만m²의 면적에 짙푸른 야자수와 각종 수목ㆍ꽃밭과 연못, 중국식 정자, 3층탑, 야외음악당 등이 자리한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시민의 휴식처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개중에는 쿵푸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한낮이면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노인도 꽤 눈에 띤다.
글. 사진 허용선 미디어원 편집위원 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