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넘어 애플·구글·메타까지 함께 거론…로이터·폭스도 한미 긴장 흐름 주목
기업 규제 문제를 넘어 통상과 안보까지 번진 워싱턴의 경고
이정찬 발행인 ㅣ 미디어원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에 차별적이고 정치적인 조치를 하고 있다는 주장,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 중국 플랫폼 확산에 따른 안보 부담, 주한미군과 미 의회의 지지 문제까지 함께 담겼다. 공화당연구위원회(RSC)가 공개한 원문을 보면,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기업 분쟁이나 쿠팡 한 회사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통상과 안보가 한 문장 안에 함께 올라온 문서다.
서한의 문구는 강하다. 의원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있으며, 한국 기업은 보호하면서 미국 기업에는 더 불리한 규제와 집행을 가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최근 한미 무역 합의에서 한국 정부가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도, 실제 조치는 그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썼다. 서한의 핵심은 간단하다. 한국 정부의 최근 조치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서한은 쿠팡만 적시하지 않았다. 원문에는 애플, 구글, 메타, 쿠팡이 함께 들어 있다. 미국 기업들이 한국의 규제와 집행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서한 전반에 깔려 있다. 특히 쿠팡에 대해서는 2025년 11월 저민감도 데이터 유출 이후 사업 면허 취소 위협, 서울 사무실 압수수색, 신규 규제, 과징금, 세무조사, 공적 연기금에 대한 보유 주식 매각 압박까지 거론했다. 한국 정부가 한 기업을 상대로 과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서한 작성자들의 판단이다.

중국 플랫폼을 끌어들인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서한은 한국 정부의 현재 조치가 미국 기업을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밀어내면 그 자리를 테무·알리바바·쉬인 같은 중국 플랫폼이 채우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이들 기업이 중국공산당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이런 흐름이 결국 안보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기업 규제 문제를 넘어 중국 변수와 안보 문제까지 한꺼번에 올려놓은 셈이다.
서한 말미는 더 직접적이다. 의원들은 미국이 수십 년 동안 한국의 가까운 친구이자 파트너였고 지금도 3만 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한국 기업은 미국에서 환영받고 번성하는데도 미국은 한국 기업에 같은 방식의 정치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의 추가 긴장을 피하고, 미국 의회가 한미 경제·안보 파트너십을 계속 지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에 대한 표적 조치를 즉각 끝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워싱턴이 이 문제를 어디까지 확대해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언론의 보도 흐름도 가볍지 않다. 로이터는 이미 2월 미 하원 패널이 한국의 미국 기업 차별 의혹 조사 일환으로 쿠팡에 소환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쿠팡과 한국 정부의 소통 자료, 규제 조치 관련 문건, 증언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원 차원의 문제 제기가 이미 조사와 압박 단계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다.
로이터는 4월 22일 보도에서도 한국 외교부가 쿠팡 수사와 미국과의 안보 협의는 분리돼야 한다고 밝힌 점을 전하면서, 이 사안을 최근 한미 간 긴장 흐름 속에 놓고 다뤘다. 기사에는 관세 문제, 미국 기술기업 대우 문제, 정보공유 문제까지 함께 언급됐다. 쿠팡 수사 하나만 따로 떼어 본 것이 아니라, 최근 이어진 여러 현안 충돌의 흐름 속에 올려놓은 것이다.
“South Korea says security talks with U.S. should not be linked to Coupang probe.” — Reuters
폭스뉴스의 논조는 더 강하다. 폭스는 이 사안을 한국의 새 좌파 정부가 미국 기업을 공격하고 중국에 유리하게 한다는 프레임으로 전면에 올렸다. 미국 보수 진영이 이번 사안을 단순 규제 분쟁이 아니라 이념, 통상, 대중국 견제가 한데 얽힌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사들이 이 대목을 짧게 처리하면, 이번 사안의 미국 내 정치적 온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Over 50 House members accuse South Korea’s new left-wing government of attacking U.S. companies, favoring China.” — Fox News
하원 54명이라는 숫자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미국 하원은 정원 435명의 입법기관이고, 의원들은 2년마다 선거를 치른다. 그래서 산업과 안보, 지역구에 민감한 사안에 빠르게 움직인다. 이미 하원 차원의 소환장이 나온 데 이어 이번에는 공화당 의원 54명이 이름을 올린 공개서한까지 나왔다. 몇몇 의원의 단발성 발언으로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미 사이에는 한두 가지 문제만 겹친 것이 아니다. 관세와 미국 기술기업 대우 문제, 정보공유 논란, 안보 협의 문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하원의 공개서한까지 나왔다. 한국 정부는 이 흐름을 개별 기업의 문제나 일시적 잡음 정도로만 다룰 수 없게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 기업 관련 규제와 수사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원칙과 기준을 더 분명하고 일관되게 설명하는 일이다.
동시에 안보와 외교 현안은 따로 더 단단하게 관리하면서, 불필요한 오해와 충돌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한미 간 신뢰를 다시 붙드는 일도 필요하다. 이번 공개서한은 워싱턴이 이 사안을 어디까지 확대해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얼마나 분명하게 설명하고, 얼마나 신속하게 동맹 관리에 나서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부담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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