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서면서 아시아 신흥국 통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도 환율 불안을 겪었다. 원·달러 환율은 3월 말 장중 1,536원까지 올랐고, 1,530.1원에 마감했다. 이후 4월 말에는 1,480원대로 내려오며 일단 숨을 돌렸다.
그러나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사정이 다르다. 인도 루피화는 달러당 95.33루피까지 밀리며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고, 올해 들어 5% 넘게 하락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달러당 1만7,000루피아대 중반까지 약세를 보였고, 필리핀 페소화도 달러당 61페소를 넘어서며 최저 수준에 가까워졌다. 세 나라는 모두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 부담이 크다. 그러나 환율 급락의 이유는 같지 않다.
이번 충격의 출발점은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긴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126.41달러까지 올랐다. WTI도 장중 110달러를 넘었다. 장 막판 일부 하락했지만 시장은 이미 확인했다. 중동 원유 공급로가 불안해지면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 부담이 큰 나라의 통화가 먼저 압박을 받는다.

인도네시아는 산유국이다. 1960년대부터 OPEC 회원국으로 활동했고, 지금도 원유를 생산한다. 그러나 국내 석유 소비가 생산량을 크게 웃돌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순수입국으로 바뀌었다. 하루 원유 생산량은 60만 배럴 안팎이지만, 석유 소비는 하루 160만 배럴 안팎에 이른다. 자국에서 원유를 생산해도 국내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 유가가 오르면 산유국으로서 얻는 이익보다 원유와 석유제품을 사오는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난다.
인도네시아의 부담은 원유 수입에만 그치지 않는다. 휘발유와 경유 같은 석유제품 수요도 빠르게 늘었다. 자동차 보급, 도시화, 산업 성장으로 소비는 커졌지만 정유시설 확충은 늦었다. 인도네시아가 발릭파판 정유공장 증설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공장의 처리 능력은 하루 26만 배럴에서 36만 배럴로 늘었다. 정부는 휘발유와 항공유 수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그동안 석유제품 수입 부담이 컸다는 뜻이다.
필리핀은 원유 생산도 적고 정유시설도 부족하다. 2020년 필리핀 쉘은 하루 11만 배럴 규모의 타방가오 정유공장을 폐쇄하고 수입 터미널로 바꿨다. 이후 필리핀에는 페트론의 바탄 정유공장이 사실상 유일한 주요 정유시설로 남았다. 정유공장이 줄면 원유를 들여와 국내에서 휘발유와 경유로 바꾸는 힘이 약해진다. 결국 싱가포르, 한국, 중국, 일본 등 외부 정유국에서 완성된 석유제품을 사와야 한다.
이 차이는 위기 때 더 뚜렷해진다. 필리핀 원유 수입의 대부분은 중동에 기대고 있다. 액체 석유제품과 LPG도 페르시아만 원유에 의존하는 아시아 정유국에서 상당 부분 들여온다. 필리핀은 원유 가격만 보는 나라가 아니다. 중동 원유 가격, 아시아 정제유 가격, 해상운송비, 환율이 동시에 물가를 밀어 올린다. 항공유가 오르면 항공권이 오르고, 경유가 오르면 물류비가 오른다. 전력비가 오르면 호텔과 제조업 원가도 오른다. 관광 비중이 큰 필리핀에는 이 부담이 더 무겁다.

인도는 또 다른 경우다. 인도는 정유시설이 약한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대형 정유공장을 갖춘 석유제품 수출국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사오는 나라 중 하나다. 인도는 하루 평균 400만 배럴이 넘는 원유를 수입한다. 러시아산 원유를 싸게 들여와 일부 부담을 줄여왔지만, 원유 대부분을 밖에서 사와야 하는 사정은 그대로다.
그래서 인도 루피화 약세는 단순한 에너지 부족 문제가 아니다. 인도는 원유를 사와 정제한 뒤 일부 석유제품을 수출해 달러를 벌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소비가 너무 크다. 자동차, 항공, 물류, 석유화학, 발전, 도시 인프라가 계속 커지는 나라에서 원유 수입대금은 곧바로 외환시장 부담이 된다. 러시아산 원유를 싸게 사도 호르무즈 해협 주변이 불안해지면 운송비와 보험료가 오른다. 원유 가격을 낮춰도 운송로가 불안하면 실제 비용은 다시 올라간다.
살펴본 바와 같이 세 나라는 모두 고유가에 약하지만, 환율 급락의 이유는 같지 않다. 인도네시아는 산유국이지만 석유 소비가 생산을 앞질렀고, 필리핀은 정유시설 부족으로 석유제품 수입 부담이 크다. 인도는 정유 능력이 있지만 국내 소비가 워낙 커 원유 수입대금이 환율을 누른다.
세 나라 중앙은행이 통화 방어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는 정유업체의 달러 수요를 관리하고 루피화 거래를 제한하려 한다. 인도네시아는 외환시장 개입과 달러 매입 규정 강화를 통해 루피아화 하락을 막으려 한다. 필리핀은 물가 상승이 생활비 전반으로 번질 경우 금리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금리를 올리면 통화 방어에는 도움이 되지만 내수와 투자가 위축된다. 외환보유액을 쓰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고유가가 길어질수록 방어 비용은 커진다.
국내 주요 경제지 한 곳은 이번 사안을 고유가에 따른 신흥국 통화 약세로 정리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단순한 고유가 문제가 아니다. 원유 수입 증가, 정유시설 부족, 석유제품 수입 부담, 정부의 연료 보조금까지 함께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를 한 묶음으로 처리하면 왜 세 통화가 이렇게 흔들렸는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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