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군사·국방 ‘엄지 척’ 뒤에 가려진 영공 방위의 위기, KF-21 전력화 지연의 실체

[정론직필] ‘엄지 척’ 뒤에 가려진 영공 방위의 위기, KF-21 전력화 지연의 실체

4월 양산 1호기 출고 행사의 상징성과 5월 예산 삭감의 괴리|10조 규모 고유가 지원금과 KF-21 양산비 사이의 재정적 선택|‘데스 스파이럴’ 우려… 단가 상승으로 인한 글로벌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한 전망

천수재 기자 ㅣ미디어원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지난 4월, KF-21 보라매 양산 1호기 출고 행사장에서 이재명은 화려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늠름한 국산 전투기를 배경으로 가슴을 펴고 엄지를 치켜세우던 그 풍경은 대한민국이 자주국방의 새 시대를 열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우리 하늘은 우리가 지킨다”는 자주국방을 향한 강렬한 메시지들은 국민에게 안보의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그날의 요란했던 셔터 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전력화 완료 시점을 2032년에서 2036년으로 무려 4년이나 늦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앞에서는 첨단 전투기에 기대어 안보의 성과를 강조하고, 뒤에서는 그 개발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이러한 행보는 정책적 실천과 정치적 홍보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가 재정 운용의 우선순위를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방위사업청과 국방부가 예산 부족을 핑계로 전력화를 늦추는 결정의 배경에는 현 정권의 재정 운용 기조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 예산 투입의 우선순위를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현재 정부가 중동 전쟁 여파를 이유로 추진 중인 약 25조 원 규모의 ‘전쟁 추경’ 안에는 고유가 부담 완화와 피해 지원 명목의 현금성 지원금 약 10조 원이 포함되어 있다.

민생 지원금과 KF-21 양산 예산을 비교한 안보 예산 그래픽
KF-21 전력화 논란은 예산 규모보다 국가 재정 운용의 우선순위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사청이 난색을 표하는 KF-21의 연간 양산 예산 역시 이와 비슷한 규모인 7조에서 9조 원 수준이다. 즉, 일회성으로 소모될 현금성 지원 예산의 투입 방향만 재검토하더라도, 전력화 지연 없이 국산 전투기 양산 비용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표심을 의식한 재정 집행에는 수십 조 원을 과감히 투입하면서, 국가 안보의 척추인 영공 방위 예산 앞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내세워 일정을 늦추는 행태는 주권 국가로서 지극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비행하는 관(Flying Coffin)’에 맡긴 영공과 안보 공백

전력화의 4년 지연은 단순히 기체 배치가 늦어지는 차원을 넘어 심각한 ‘안보 공백’을 의미한다. 현재 공군이 운용 중인 F-4와 F-5 전투기는 도입한 지 40~50년이 경과하여 기체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태다.

항공업계에서 이러한 노후 기종을 ‘비행하는 관(Flying Coffin)’ 혹은 ‘과부 제조기(Widow-maker)’라고 부르는 이유는 조종사의 생명을 담보로 한 작전 수행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KF-21은 이러한 노후 기종을 대체하여 공군의 전력을 현대화할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전력화가 늦춰지면 우리 조종사들은 노후화된 기체에 몸을 맡긴 채 4년을 더 버텨야 하며, 이는 곧 국가 영공 방위 능력의 질적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핵추진잠수함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명분으로 당장 시급한 공군력 보강을 뒤로 미루는 것은 전략적 우선순위의 오류라는 지적이 높다.

‘데스 스파이럴(Death Spiral)’과 K-방산의 신뢰도 저하

군사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생산 일정 지연에 따른 ‘데스 스파이럴(Death Spiral, 죽음의 나선)’ 현상이다.

무기 체계는 생산 물량이 줄고 기간이 늘어날수록 고정비가 상승하여 대당 단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이는 결국 국산 무기 체계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우리 기술력에 대한 불필요한 회의론이 확산될 우려를 낳는다.

항공기 생산라인에서 조립 중인 KF-21 전투기
KF-21 양산 일정은 공군 전력 공백과 K-방산 수출 신뢰도에 직접 연결된다.

특히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있는 미국의 F-35와 비교했을 때, KF-21의 가격이 상승한다면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급락할 전망이다.

최근 큰 관심을 보였던 UAE(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의 잠재 고객들이나 분담금 문제로 갈등 중인 인도네시아에 전력화 지연은 ‘사업의 불확실성’이라는 부정적인 신호를 주게 된다. 결국, 국내 정치적 재정 운용의 여파가 K-방산의 글로벌 신뢰도를 스스로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위험이 크다.

안보는 수사가 아니라 실천이다

지난 5월 초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 상선이 위협받았을 때 보여준 정부의 미온적 대응은 강력한 물리적 억제력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밖에서는 주권 수호에 신중론을 펼치면서, 안방에서는 자주국방의 핵심 전력 예산을 삭감하는 이중적 태도는 국가 안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없다.

국가 안보를 정치적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양산 1호기 앞에서 보인 그 다짐이 진심이었다면, 정부는 일회성 현금 지원보다 국가의 생존권이 걸린 국방 예산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한다. 훗날 현대전의 긴박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될 ‘텅 빈 영공’의 대가는 그 어떤 화려한 메시지로도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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